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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 제100주년 3·1절 기념식 기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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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댓글 0건 조회 23,066회 작성일 19-03-06 21:31

본문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해외동포 여러분,

 

  100 오늘, 우리는 하나였습니다. 3 1 정오, 학생들은 독립선언서를 배포했습니다. 오후 2, 민족대표들은 태화관에서 독립선언식을 가졌고, 탑골공원에서는 5천여 명이 함께 독립선언서를 낭독했습니다.

 

  담배를 끊어 저축하고, 금은 비녀와 가락지를 내놓고, 심지어 머리카락을 잘라 팔며 국채보상운동에 참여했던 노동자와 농민, 부녀자, 군인, 인력거꾼, 기생, 백정, 머슴, 영세 상인, 학생, 승려 우리의 장삼이사들이 3·1독립운동의 주역이었습니다. 그날 우리는 왕조와 식민지의 백성에서 공화국의 국민으로 태어났습니다. 독립과 해방을 넘어 민주공화국을 위한 위대한 여정을 시작했습니다.

 

  100 오늘, 남과 북도 없었습니다. 서울과 평양, 진남포와 안주, 선천과 의주, 원산까지 같은 만세의 함성이 터져 나왔고 전국 곳곳으로 들불처럼 퍼져나갔습니다. 3 1일부터 동안 남·북한 지역을 가리지 않고 전국 220 시·군 211 시·군에서 만세시위가 일어났습니다. 만세의 함성은 5월까지 계속되었습니다.

 

  당시 한반도 전체 인구의 10% 되는 202만여 명이 만세시위에 참여했습니다. 7,500 명의 조선인이 살해됐고, 16,000 명이 부상당했습니다. 체포·구금된 수는 무려 46,000 명에 달했습니다. 최대의 참극은 평안남도 맹산에서 벌어졌습니다. 3 10, 체포, 구금된 교사의 석방을 요구하러 주민 54명을 일제는 헌병분견소 안에서 학살했습니다. 경기도 화성의 제암리에서도 교회에 주민들을 가두고 불을 질러 어린아이까지 포함해 29명을 학살하는 등의 만행이 이어졌습니다. 그러나 그와 대조적으로, 조선인의 공격으로 사망한 일본 민간인은 명도 없었습니다.

 

  북간도 용정과 연해주의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하와이와 필라델피아에서도 우리는 하나였습니다. 민족의 일원으로서 누구든 시위를 조직하고 참여했습니다. 우리는 함께 독립을 열망했고 국민주권을 꿈꿨습니다. 3·1독립운동의 함성을 가슴에 간직한 사람들은 자신과 같은 평범한 사람들이 독립운동의 주체이며, 나라의 주인이라는 사실을 인식하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이 많은 사람의 참여를 불러일으켰고 매일같이 만세를 부를 있는 힘이 되었습니다.

 

  열매가 민주공화국의 뿌리인 대한민국 임시정부입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임시정부 헌장 1조에 3·1독립운동의 뜻을 담아 <민주공화제> 새겼습니다. 세계 역사상 헌법에 민주공화국을 명시한 사례였습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친일잔재 청산은 너무나 오래 미뤄둔 숙제입니다. 잘못된 과거를 성찰할 우리는 함께 미래를 향해 있습니다. 역사를 바로 세우는 일이야말로 후손들이 떳떳할 있는 길입니다. 민족정기 확립은 국가의 책임이자 의무입니다.

 

  이제 와서 과거의 상처를 헤집어 분열을 일으키거나 이웃 나라와의 외교에서 갈등 요인을 만들자는 것이 아닙니다. 모두 바람직하지 않은 일입니다. 친일잔재 청산도, 외교도 미래 지향적으로 이뤄져야 합니다. <친일잔재 청산>, 친일은 반성해야 일이고, 독립운동은 예우 받아야 일이라는 가장 단순한 가치를 바로 세우는 일입니다. 단순한 진실이 정의이고, 정의가 바로 서는 것이 공정한 나라의 시작입니다.

 

  일제는 독립군을 <비적>으로, 독립운동가를 <사상범>으로 몰아 탄압했습니다. 여기서 <빨갱이>라는 말도 생겨났습니다. 사상범과 빨갱이는 진짜 공산주의자에게만 적용되지 않았습니다. 민족주의자에서 아나키스트까지 모든 독립운동가를 낙인 찍는 말이었습니다. 좌우의 적대, 이념의 낙인은 일제가 민족 사이를 갈라놓기 위해 사용한 수단이었습니다.

 

  해방 후에도 친일청산을 가로막는 도구가 됐습니다. 양민학살과 간첩조작, 학생들의 민주화운동에도 국민을 적으로 모는 낙인으로 사용됐습니다. 해방된 조국에서 일제경찰 출신이 독립운동가를 빨갱이로 몰아 고문하기도 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빨갱이> 규정되어 희생되었고 가족과 유족들은 사회적 낙인 속에서 불행한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

 

  지금도 우리 사회에서 정치적 경쟁 세력을 비방하고 공격하는 도구로 빨갱이란 말이 사용되고 있고, 변형된 <색깔론> 기승을 부리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루빨리 청산해야 대표적인 친일잔재입니다. 우리 마음에 그어진 <38> 우리 안을 갈라놓은 이념의 적대를 지울 함께 사라질 것입니다. 서로에 대한 혐오와 증오를 버릴 우리 내면의 광복은 완성될 것입니다. 새로운 100년은 그때에서야 비로소 진정으로 시작될 것입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지난 100 우리는 공정하고 정의로운 나라, 인류 모두의 평화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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